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여실히 통하는 정글과도 같지만, 상대적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억울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미국은 1988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반하는 슈퍼 301조를 제정해 미국 자신이 손해 보는 무역이나 무역장벽에 대해 관세나 수입중지로 보복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는데요. 우리나라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전 이 조치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었죠.
그런데 미국이 이번에는 외환시장에서 상대국에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BHC 수정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BHC는 베넷-해치-카퍼(Bennet-Hatch-Carper·BHC)의 약자입니다.
바로 이 법안을 공동 발의한 마이클 베넷(Michael Bennet)과 오린 해치(Orrin Hatch), 톰 카퍼(Tom Carper) 상원의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는데요. 듣기만 해도 정말 얄미운 이름이네요.
이 법안은 현재 상하원의 합의를 통과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만 하면 발효가 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BHC 법안이 무서운 이유
이 법안이 무서운 이유는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명하면 무역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처럼 수출의 비중이 큰 나라는 타격이 훨씬 클 수밖에 없겠죠. 미국 재무부는 작년 10월 발표한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흔적이 있다”고 경고를 했다니 심상치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출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수입은 그보다 더 줄어든 불황형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원화가치가 오르지 않고 내려갔기 때문에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의혹이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원화가치가 하락하긴 했지만, 유로화나 엔화가 우리보다 더 떨어지는 상황이니 수출이 쉽지만은 않겠죠.
사실 2014년 대비 2015년의 달러 대비 원화 절하율 6.9%로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원화가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관련기사) 브라질 헤알화가 29.4%, 유로화는 16.4%, 엔화가 12.5%의 절하율을 보였던 것에 비해서는 말이죠.
유럽과 일본 등의 대놓고 양적 완화를 하는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이라 부르기에는 근거가 다소 빈약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기획재정부는 “미국이 한국의 외환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거나 BHC 법안 관련 우리 환율정책을 언급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G2 경쟁, 북한의 미사일과 핵 도발 등 복잡한 정세가 맞물려 있습니다. 그 최전선에 있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를 봤을 때 BHC 수정법안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압박의 포석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제정치와 경제가 단순히 수치놀음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정부의 경제외교력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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